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트 스타 코리아 (문단 편집) === 에피소드 10 : 현대 미술계를 비판하는 작품을 하라 === 6월 8일날 10회가 방송되었다. 주제는 [[http://program.interest.me/storyon/artstarkorea/12/Board/View?b_seq=11|현대 미술계를 비판하는 작품 제작하기]] 초청 심사위원 없음. 최종 3인으로 신제현, 유병서, 구혜영이 선발되었다. 이현준, 홍성용은 탈락했다. 이날 방송은 현대미술계를 비판하는 참가자들의 영상으로 시작되었다.[[http://enews24.interest.me/news/article.asp?nsID=421236|#]] 영상에서 료니는 "어떤 것이 미술계인지 모르겠다. 작품을 팔았을 때 내가 그 미술계에 들어가는 것인지..."라고 말했고, 차지량은 "학연과 지연이 팽배하고 작가에 대한 보장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라고, 심우탁은 "돈없고 가난한 예술가들을, 작품이 좋다고 해서 마냥 받아주는 갤러리는 정말 없다"라고 씁쓸한 현실을 이야기했다. 구혜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은 계속된다: double frames>이란 제목의 퍼포먼스를 공개했다.[[http://program.interest.me/storyon/artstarkorea/15/Board/View?b_seq=11&page=1&p_size=10|#]] 구혜영 자신은 기둥에 묶어 퍼포밍을 했으며, 친구 큐레이터가 작품을 설명하는 식으로 도움을 주었다. 미술기관>기획자(큐레이터)>예술가 순으로 된 현 미술계 상황을 퍼포먼스로 은유화했다. 하지만 심시위원들은 너무 수동적으로 기둥(미술기관)에 기대있는것 아닌가 비판했다. 그리고 사실상 현재 미술계의 계급구조는 물주(아트 딜러)>미술기관>기획자>예술가 순이다. 친구 큐레이터를 퍼포먼스에 동원했다는 점도 맥락상 잘 맞지 않았다. > 현대 미술계에서 아티스트는 미술작품을 만드는 1차 생산자, 가장 하위층으로 전락한 듯하다. 하얀색 단상은 미술관의 힘을 상징한다. 아티스트는 그 단상에 종속되어있다. 그로부터 자유롭고 싶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에게 도움을 받고 싶은 마음을 숨길 수 없다. 신제현은 <미술 만다라>라는 제목의 작업을 공개했다.[[http://program.interest.me/storyon/artstarkorea/21/Board/View?b_seq=12&page=1&p_size=10|#]] 유명 전시기관(미술관, 갤러리, 대안공간)의 이름을 사탕가루로 만들고 작가 자신이 수조에서 발버둥치면서 물이 튀게 만들어 그 전시기관들의 이름을 지우는 퍼포먼스였다. 만다라로 만든 전시기관들의 이름은 뉴욕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아트선재센터, 갤러리 풀, 아트센터 나비 등이다. 홍경한 심사위원은 이 퍼포먼스를 보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아래는 작품 설명. > 나는 대용량 사탕의 포장지를 벗겨서 12가지 다른 맛의 사탕으로 분류하고 다시 5천개의 개별 포장지를 벗겨서 색소를 빼고 망치로 부숴서 가루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가루로 내가 앞으로 전시하고 싶은 전시공간의 이름을 심신의 수행방법 중 하나인 모래 만다라의 형식처럼 그렸다. 모래 만다라를 만들고 뒤집는 행위는 불가에서 마음을 비우고 집착과 욕망으로부터 벗어나 깨달음을 얻기 위한 과정인데, 나에게 미술은 마치 그러한 깨달음의 과정이고 그 깨달음을 실행하기 위해서 공모라는 험난하고 반복적인 수행과정을 거쳐야 가능했다. 만들어진 사탕 만다라 가운데에 수조를 설치하고 그 속에서 나는 물이 넘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나를 알리는 작업을 수행하는 퍼포먼스를 했다. > 내가 대학에서 공부할 때는 열심히 작업만 하면 뭔가 이룰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환상이 있었다. 실험적이고 비 상업적인 작가. 즉 순수한 작가가 되라고 배웠는데 졸업 후 나간 미술현장은 그리 순수하지 못했던 것 같다. 전시를 하기 위해선 공모전에서 큐레이터의 성향을 파악하고 눈치를 봐야했 정작 하고 싶은 작업보다는 전시공간에서 원하는 전시를 하기 마련이었다. 가공된 사탕을 다시 순수한 설탕으로 돌리는 수행의 과정을 통해 나 스스로 미술계를 다시 돌아보고 나 자신도 깨달음을 얻고자 하였다. 그리고 순수한 물속에서의 수행을 통해 나 스스로를 반성하고 깨고 싶었다. 유병서는 <웰컴 투 더 정글 welcome to the jungle...>을 공개했다.[[http://program.interest.me/storyon/artstarkorea/22/Board/View?b_seq=11&page=1&p_size=10|#]] 이 작품은은 현대미술계의 복잡성을 정글에 비유해 재현한 설치작업이다. 이런 작업은 그 특성상 불쾌감을 줄 수 있어 매너없다는 비판을 받았다. 동물학대 논란도 벗어나기 어렵다. 예술 평가 면에서 보면, 심사위원들은 너무 직설적으로 설정을 가져다 붙인건 아닌지 지적했다. 이하 내용은 전시 설명. > 바닥을 덮고 꿈틀대고 있는 벌레들은 지구촌 여기저기서 작업에 매진하고 있는 무명작가들이다. 그 내부에서는 다양하지만 작은 이벤트 들이 진행되고 있고 모두 삶(또는 예술)을 위해 치열하게 움직이고 있음을 관찰할 수 있다고 한다. (유병서 자신도 여기에 포함된다고 한다.) > 공중에 매달려 있는 조형물은 지구 earth를 재현한 오브제이다. 그런데 이 지구는 사람들이 행복하고 모든 일이 잘 되고 있는 그런 행복한 지구촌이 아니라 전쟁이나 재앙, 그리고 독재정권 등, 잘돗된 사회적 편견과 악덕한 관습에 허덕이고 있는 불쌍한 지구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 굴하지 않고 계속 자기 목소리를 내는 (탈-식민지의) 작가들 (대개 이런 작가들은 특정한 상황과 지역을 주제로, 국가간間을 횡단하며, 주로 국제적 행사-비엔날레를 통해 소개된다)을 귀뚜라미로 비유해 보았다. 뱀은 퇴행성-선정주의를 주제로, 주로 스펙타클한 작업을 하는 초-유명작가들 (데미안 허스트나 무라카미 다카시,매튜바니 등등)을, 단상과 두 개의 초는 다시 모더니즘으로 회귀함을 선택한 역시 초-유명작가들(게르하르트 리히터,리처드 세라 등)을 표상한다. 이들의 지위는 벌레들이 아무리 열심히 움직여도 범접하기 힘들다. > 바닥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무명작가들을 유린하는 햄스터는, 작가들을 위협하는 어떤 상황에 대한 알레고리이다. 그것은 때론 돈이기도 하고, 학력이기도 하고, 기회이기도 하고, 정치 이데올로기도 하다. 나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무명-작가들의 위태로운 삶이 처한 위기를 , 햄스터를 통해 재현해 보았다. > 이 작업을 보기 위해선 바닥을 주의해야 한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벌레-무명작가들- 작품?을 밟게 되므로... 이러한 배치를 선택함으로서, 좀 더 ‘대중적인 차원’ 의 ‘현대미술에의 사려 깊은 동참’ (전시장에 좀 더 오래 머물기)을 호소하려 하였다. 이현준은 을 공개했다.[[http://program.interest.me/storyon/artstarkorea/26/Board/View?b_seq=13&page=1&p_size=10|#]] 학연, 지연, 혈연 중심으로 구성된 현재 예술계의 상황을 자신이 아들을 기르면서 겪은 경험에 빗대 표현했다. 하지만 심사위원들은 작품에서 특별히 어떤 비판의 메시지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한 개인적 경험에 공감못하는 사람(미혼자의 경우)도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지만 이런 비유가 큰 무리는 아니라는 주장도 있었다. > 나의 경험과 일상에 비유해 본다. 아들과 손을 잡고 놀이터에만 나가도 집단을 볼 수 있다. 이유가 어찌됐든 그들의 눈초리는 달갑지 않다. 학연, 지연 또는 혈연 등으로 맺어진 하나의 그룹(집단)이 올라선 “자리”와 “위치” 그리고 그 자리에 오르고 싶어 하는 어떤 이의 노력. 오늘도 그 쉽지 않은 노력이 헛되지 않길 바래본다. 홍성용은 를 공개했다. [[http://program.interest.me/storyon/artstarkorea/29/Board/View?b_seq=12&page=1&p_size=10|#]] 자신의 얼굴에 옻으로 YBA 작가들(마크 퀸, 트레이시 에민, 채프먼 형제 등)의 그림을 그려 서구에서 유행하는 미술을 수용하기 바쁜 한국 현대미술계의 실상에 대해 비판했다. 참고로 옻이 올르면 심한 경우 죽을 수도 있으니 절대 따라하지 말것. 작품 자체는 좋았지만 이미 중국 행위예술가인 장환(張洹, Zhang Huan)이 비슷한 작업을 한 바 있어 표절의 문제가 제기되었다.[* '얼굴에 무언가를 그린다'는 행위 면에서 유사했다. 적어도 이 경우 '나는 이 작가와 다른 맥락에서 이런 행위를 한 것이다'라는 것을 증명하고 자신을 방어, 옹호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술가는 이미 과거에 비슷한 작업을 했던 작가가 있는 경우 이에 대한 반론을 준비해야 한다. 저작권이 중시되고 세세한 것까지 저작권으로 보호되는 현대사회에서, 기성작가는 자기 작품을 배꼈다는 소리를 들으면 결코 가만히 있지 않는다. 어찌보면 이는 업계 내의 기본적인 매너이자 에티켓이기도 하다.[* 그래서 현대미술가는 참고자료(reference, 과거에 어떤 작가가 어떤 작업을 했는지)를 많이 알아야 하고, 이 때문에 현대미술이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단순히 예쁜 그림을 그린다고 예술가로서 성공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기도 하고 말이다. 취미로 예술을 하거나, 아마추어 작가라면 별 상관 없지만, 전업작가인데도 생각없이 그림을 그렸다가 과거에 비슷한 작품이 있다는걸 누군가 지적하기라도 하면 정말 뒷처리가 힘들어진다. 특히 단순한 형태, 구도, 색상을 사용하는 추상적인 작업의 경우 정말 너무 쉽게 과거 작품과 겹칠 수 있다. 초보 작가들이 자주 저지르는 실수 중 하나. '설마 누가 이런 작업을 했겠어?'라고 생각하고 그냥 작업을 진행했다가 소송까지 가는 경우도 있다. 그만큼 이미 과거 예술가들이 이것저것 별 신기한 짓을 많이 해보기도 했다는 얘기다. 현대예술가들이 점점 더 괴상한 짓을 많이하고 어려운 이론으로 작업을 포장하려 하는 것도 이전 예술과 '차별화'를 시도하려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희소성을 부여해야 가치가 오른다'는 너무나 당연한 경제논리가 예술에도 적용되는 셈.] > 많은 한국의 젊은 작가들이 자기화 과정 없이 서구 현대미술을 수용하고 작업하는 분위기 속에서 한 작가로서 경험하고 느꼈던 이야기들을 시각화하는 작업을 진행하였습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